인산선생과 나...................................................최은아

*  여기서 그동안 맺힌 한을 실컷 풀고 가시오. 


선생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자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처음, 선생님과의 만남에 관해 쓰고자 마음먹었을 때, ‘내가 과연 써도 되는가?‘ 하는 생각으로 한참동안 펜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가 마침 저녁 무렵이라 동녘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누가 나에게 달에 대해 쓰라고 한다면 내가 과연 써도 되는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직 서양식 학문방법에 따라 서양식 지식만 접해 온 내가 과연 달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가? 내 관념 속에 심어져 있는 달의 상(像)은 


흙과 암석과 광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물질일 뿐이다. 그것이 우주에서 어떤 신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생명체인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성한 정신활동을 하고 있는지 나는 추측조차 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자연과학적 사고습성에서 벗어나 사물을 진정한 본래의 모습 그대로 보고 싶다는 갈망을 비로소 느끼기 시작한 나로서는 사물에 대한 나의 인식이 너무나 한쪽으로 확대,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간신히 깨닫고 있을 뿐이다. 


무작정 쌓아 왔던 잘못된 관념의 탑을 무너뜨리고 이제 겨우 새로운 인식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백지상태에서 무슨 자기생각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사물에 대한 입장이 이러할 진데 선생님에 대해서는 더욱 두렵다. 그러나 


환한 달과 어두운 도로 위를 번쩍이며 달리는 차와 분주히 오가는 행인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누군가 구석진 모퉁이에 서서 “달이 저기 있노라”는 한마디쯤은 조그맣게 얘기해도되리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기 그 분이 계십니다.’ 이 말만은 지금 내 처지로서도 충분히 해도 되는 말인 것이다. 내가 선생님이 계심을 알게 된지는 넉 달이 채 못 된다. 우연히 


선생님의 저서인 [신약(神藥)]을 손에 잡게 된 아버지가 지금까지 한번도 듣지 못했던 찬탄의 어조로 그 분을 칭했을 때 나 역시 비상한 느낌으로 그 책을 들었다. 예사 책이 아니었다. 얼떨떨했다. 과연 [神藥]의 내용이 참이며 사실인가? 이것이 


과대망상증 환자의 혼잣소리가 아니라면 실로 인류를 구제할 복음서임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말씀의 마력에 끌려 다 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신선하고 새로운 바람에 가슴이 울리어 왔다. 


나로서는 선생님의 크심을 측량할 수 없다. 한번은 아버지에게 선생님을 ㅇㅇ교주 강모(羌某)선생님에 견주면 어떠한 가고 물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대답이 강ㅇㅇ은 인산선생님에게는 감히 견줄 수도 없는 사람으로서 


선생님을 그리스도에 견준다면 그는 세례 요한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며, 세례 요한 같은 길 닦는 인부의 역할쯤이라도 제대로 해낼 어른이 있다면 그 이는 최제우 선생 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아버지는 1,000년 전의 최치원 선생이라면 아마 인산선생님과 담론이라도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神藥]책을 통해 얻은 것뿐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몇 마디 말 속에서 확신을 굳힌 것뿐이다. 아무것도 이해 못하면서 단지 그것만으로 어떻게 선생님의 사상세계를 흠모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런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러나 


뭐라고 설명할 길 없으나 [神藥]을 손에 쥔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어린 날의 어리석었던 긴 방황과 모색의 여정이 일단락 지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길은 여기서부터 이다.’ 대학원도 유학도 아닌 


오직 선생님을 좇으며 선생님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원해 온 길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존재는 내게는 신(神) 이상이다. 저 높은 곳에 계시는 신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지니고 삶에, 사람에 시달리며 고뇌하시고 절대적 고독 속에서 불쌍한 목숨들을 염려해 주시는 어른이시기에 신 이상의 존재로 내 마음에 비춰진다. 신약을 읽고 난 뒤에 나는 새로이 


한문 공부를 시작했다. 심오한 철학과 동양과학이 내포된 인산선생님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한문 독해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텅 빈 머리만 들고 가 


선생님을 뵙는다는 것이 너무도 송구스러웠기에 무작정 글자 하나라도 더 익히고 싶었다. 1987년 9월 27일 서울에 올라오신 선생님을 찾아가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자, 대뜸 하시는 말씀이 


“여자는 여자의 할일이 있으니 남자가 할일을 하려 해서야 쓰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 서러움이나 굴욕감은 분명 아니었다. 전생에 내가 얼마나 부덕한 짓을 하였기에 


여자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좌절감에서 나오는 슬픔이었다. 선생님은 다른 젊은이들과 말씀을 나누시다가 내 생각이 나신 듯 내게 고개를 돌리시더니 다시 다짐하시듯 하문 하셨다. “무슨 일을 꼭 하고 싶으냐?”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한 사람이 무슨 일 하나 하려들면 두 사람이 나와서 방해하는 게 이친데.” 

 
선생님 당신 혼자서 하신 말씀일까? 선생님의 그 한마디 말씀에 - 당신께서 얼마나 고통과 좌절을 겪으셨기에 저 말씀을 하실까? 세상 사람들의 무지와 탐욕에 얼마나 시달려 오셨기에 저 말씀을 하실까? 책에서 


읽었던 선생님의 살아오신 일생이 주마등처럼 내 뇌리에 떠오르면서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치마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막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 높으신 선생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펼쳐지지 못하고 방해만 받아 오셨구나. 나는 어떤 고난이라도 참고 견뎌야지. 부끄러웠다. 세상의 어려움에 한번도 도전해 본 적도 없이 내 자신 안에서 자신과의 싸움에 기력을 소모해 온 내 작은 그릇이 부끄러웠다. 


번민 갈등 방황 고독 따위 갖가지 사치스런 감정의 낭비는 이제 다시는 말자고 다짐했다. 그때, 나를 괴롭혀왔던 헛된 상념들은 일시에 스러졌다. 이 세상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도 벅찬 일인데 내 자신 못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덕인다면 그 무슨 어리석은 짓이랴! 선생님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이 숨쉬며 살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벅차다. 내가 평생을 두고 공부한다고 해도 못 다할 학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마음은 기쁘고 내 의지는 더욱 강해짐을 느낀다. 내 존재의 의의와 값어치가 헛된 것이 아님을 나는 확신한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선생님의 상(像)이 내 가슴에 꽉 차 있음을 나는 안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얼마나 신비한 것인가? 믿음을 위하여, 지기(知己)를 위하여, 겨레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 같이 던졌던 옛 어른들의 정신이 시공을 초월하여 내 가슴에 까지 전해져 온다. 


한편으로, 세상은 어쩌면 이다지도 선생님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무지와 사악이 권세를 잡고, 의로움이 총칼 맞아 쓰러지고, 지혜가 조롱당하는 것이 세상일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선생님의 귀한 시간과 기력이 전생 업장으로 병을 얻은 사람들의 약 처방에 이렇게 빼앗기고 수다스런 여인네들의 잔소리 상대에 선생님의 생명이 저렇게 소모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한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무겁다. 


덕은 시궁창에나 처박히고, 헛된 지식과 금력이 활개를 치고, 우리 조상들의 얼보다는 서구의 잡된 과학이 날뛰고, 사람 위에 다른 것들이 올라타고 앉아 사람과 뭇 생명체를 압살하는 현실은 


과거 어느 시절에도 있었던 세기말적 현상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선생님을 이렇게도 모른단 말인가? 어느 방송국 강연회장에서의 일은 선생님을 대하고 있는 세상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약속 시간에 맞춰 나오신 선생님을 한참이나 기다리시게 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강단에 선생님을 모셔 놓은 채 담당자 한 사람이 나와 방송국 선전에 시간을 보낸다. 그 P. D인지 아나운서인지의 결례는 


개인의 일이라 치더라도 그 청중의 태도는 또 어떠한가. 열심히 귀 기울이고 필기하는 진지한 얼굴들이 여기저기 보이나 대다수는 할일 없이 나와 앉아 있는 노인네들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어렵고 딱딱했던지 웅성웅성 거리며 들락날락한다. 선생님의 강연회장에 그런 사람들을 모아 놓은 방송국 측의 무지와 그 청중의 무지는 그대로 선생님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세상이리라. 


‘쇠귀에 경 읽기지.’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찌르르 아프면서 한편으로 수치심을 느꼈다. 나 역시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 못하는 것으로선 저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다른 점이라고는 


그 ‘경’을 공손히 귀 기울여 듣고 싶어 하는 ‘소’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해 못하는 바에야 다른 ‘소’보다 나을 것도 없다. 공부를 하는 것.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이루는 것. 


나는 지금 하나의 진흙 반죽 덩어리 일뿐이다. 한 말씀이 내리면 주르르 흘러나가 버린다. 어떻게, 언제나 그릇을 빚을 수 있을까? 이것만이 내게 주어진 과제이며 이것은 나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한없이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절망에 빠져 눈물짓는 환자의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다 들어 주시며 “여기서 그동안 맺힌 한을 실컷 풀고 가시오.” 하시던 선생님. 


찾아오는 환자들이 어쩌다 감사하다고 드리는 작은 선물을, 쓰시지도 않으실 텐데 메모첩 하나일망정 한 겹 한 겹 포장을 풀어 내용물을 쓰다듬어 보시던 선생님. 내 평범한 눈은 이런 사소한 것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너머 선생님의 깊고 깊은 정신세계의 편린을 내 정신 속에 삼가 담아 모실 수 있는 때는 언제 오려나. 


글쓴이 최은아(민약회 회원) 민속神藥 제 2집 162쪽(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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