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05 17:12

http://blog.naver.com/dandy114/60024990392

블링크 :클래식 좋아해

베를린 필은 일년에 세 번 특별연주회를 갖는다.

5월 1일 베를린 필 창립기념일에 유럽의 유명건축물에서 갖는 유럽 콘서트.

6월 마지막 일요일에 베를린 발트뷔네에서 갖는 피크닉 콘서트.

그리고 12월 31일에 송년음악회.

이 중 특히 유명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 콘서트가 바로 발트뷔네 피크닉 콘서트다.

매년 세계적인 지휘자를 초빙해서 소품위주로 약간 대중적인 레파토리를 선보인다.

 

 

 

<  역대 지휘자 및 연주회 테마 일람  >
1992년 조르쥬 프레트르  프렌치 나이트 (French Night) 
1993년 오자와 세이지  러시안 나이트 (Russian Night) 
1994년 마리스 얀손스  댄스 앤 랩소디 (A Night of Dances & Rhapsodies) 
1995년 사이먼 래틀  아메리칸 나이트 (American Night) 
1996년 클라우디오 아바도  이탈리안 나이트 (Italian Night) 
1997년 주빈 메타  상트 페테르부르크 나이트 (St. Petersburg Night) 
1998년 다니엘 바렌보임  라틴 아메리칸 나이트 (Latin American Night) 
1999년 제임스 레바인  로맨틱 오페라 나이트 (A Romantic Opera Night) 
2000년 켄트 나가노  리듬 & 댄스 (Rhythm & Dance) 
2001년 플라시도 도밍고  스페니쉬 나이트 (Spanish Night) 
2002년 마리스 얀손스  월드 앙코르 (World Encores) 
2003년 오자와 세이지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2004년 사이먼 래틀  차이코프스키 나이트 (Tchaikovsky Night) 
2005년 사이먼 래틀  프렌치 나이트 (French Night) 

 

베를린 교외의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에 위치한 발트뷔네는

발트(Wald=숲), 뷔네(Buehne=무대) 라는 말 그대로 숲속에 설치된 야외무대다.

바로 근처에 있는 올림피아 파크와 함께 1935년 히틀러가 나치의 선전활동을 위해 설립한

시설이다.

【인공위성에서 본 사진 by Google Earth

왼쪽 중앙부 부채꼴 시설이 발트뷔네, 오른편 둥근 시설이

이번 2006 독일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리는 올림피아 파크】

(위성사진 출처 : http://muneharu.at.webry.info/200605/article_7.html)

 

*2만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그 다음해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체조경기장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곧 바그너의 '리엔치'가 공연되는 등 음악의 정소로 변했으나 전쟁으로

암흑기를 겪었고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전쟁이 끝난 뒤 이곳은 다시 권투경기나 베를린 영화제

같은 이벤트에 사용되었다. 1964년에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도 여기서 했다.

그러나 1965년 롤링스톤즈 콘서트 때 관중의 난동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1970년대에 보수를 하여 1980년에야 다시 문을 열었다. 이후 이곳에서는 주로 록 콘서트가

열렸지만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등 클래식 공연도 있었다. 1982년에는 무대 위에 지붕이 설치되어 좀더 편해졌고 1984년에 베를린 필의 연주회 이후로 클래식 연주의 빈도가 높아졌다. *

(※ **부분 : 세상의 모든 클래식/박주용 著 발췌)

 

베를린의 장벽은 1989년 11월부터 허물기 시작해서 이듬해 90년 10월에 독일이 통일됐는데,  

그 통일을 목전에 두고 90년 6월 30일에 이 발트뷔네 야외음악당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베를린 필이 여름밤 공연을 열었다. 이때 이후 날짜가 매년 6월 마지막주 일요일로 고정해서

피크닉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광대한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명연주.

관객은 '피크닉 콘서트'라는 말 그대로 캐주얼한 차림으로 각자 도시락을 들고 와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연주를 즐기는 것이다.

 

해가 저물 무렵, 밤으로 이어지는 숲속 풍경 또한 최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잔디석에는 지긋이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맞댄 부부, 

엄마 아빠 따라와서 음악에 맞춰 깜찍한 춤을 추는 아이,

처음 본 사람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흥겹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편안한 모습들이 정말 보기 좋다.

연주중에 뉘엿뉘엿 해가 지는 시간으로 설정되어 있고,

깜깜해지면 관객들이 미리 준비한 불꽃을 하나 둘 켜기 시작한다.

 

 

【처음엔 밝았다가 점차 해가 기울고 마지막엔 공연장 light up 으로 멋진 무대】
(사진 출처 : http://www008.upp.so-net.ne.jp/namnam/057/057.html)

 

지휘자는 혼신의 연주와 함께 때론 익살스런 표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콘서트의 마지막은 항상 린케의 '베를린의 숨결(Berliner Luft)'이라는 경쾌한 곡으로 마무리한다.

지휘에 맞춰 모두가 휘파람을 불고 박수로 하나되는 모습 또한 훈훈한 장면이다.

 

나는 지난 10년간의 발트뷔네를 DVD로 접했는데

공연마다 매력이 가득해서 '다 좋다!'고 밖에 말할 수없다.

 

 

새롭게 피어나는 꿈

bardtale.egloos.com
 

베를린 발트뷔네 콘서트 '두 번째 이탈리아의 밤'

문화적 저력을 결정하는 두 단어: 폭과 깊이 (1)

2005년 8월 27일 토요일 베를린 발트뷔네에서는 <제2회 이탈리아의 밤(die zweite italienische Nacht)>이라는 이름으로 연주회가 열렸다. 그리고 바로 그 이틀 전인 25일 목요일 동베를린 지역의 중심가인 프리드리히 거리에서는 베를린 코미쉐오퍼의 전임 명연출자 하리 쿠퍼와의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두 꼭지로 이루어진 이번 연재에는 이상의 두 가지 행사에 대한 촌평이 담겨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본 글의 제목처럼, 베를린시의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두 장면을 나란히 제시하는 것, 좀 어색하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장면이 각각 담고 있는 함의가 상이할 뿐더러 그자체로 각각은 다른 종류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점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렇다. 오페라 갈라콘서트인 <발트뷔네> 공연은 고전음악의 대중화를 지향한다지만 동시에 이런 행사가 공연과 감상 양 측면에 있어 오히려 그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하는 ― 우리에게는 “열린음악회”를 둘러싼 논의로 익숙한 종류의 ―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반면 하리 쿠퍼 간담회의 경우 직접 그 자리에 참여하기 전의 예상으로는 좋게 얘기하자면 학술적 가치를 지닌 회합이긴 하겠으나 사회적으로 특별한 반향을 갖지 못할 소수 인사들의 모임에 불과하다고 지레짐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장면을 ‘함께 몽타쥬 함으로써’ 독일의 새로운 수도 베를린의 문화적 면모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두 장면이 하나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보아내야 할 것은 이들이 작품이 창조되는 중심이라 할 오페라무대 외부에 놓여 있으면서 동시에 수용층을 넓히면서 동시에 예술 이해의 깊이를 다지는 소통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오페라하우스를 짓는다고, 최신 프로덕션의 공연을 불러온다고 문화적 토양이 저절로 형성되진 않음은 자명한 일이다. 진정 필요한 것은 연출가이든 음악가이든 간에 예술가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전해줄 수 있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 공간의 마련이다.
다음의 글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평범한’ 베를린시민 일상의 한 단면을 ‘폭’과 ‘깊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어쩌면 우리는 전쟁의 폐허 위에 지어진 이 회색빛 도시가 왜 그토록 20세기 초엽 그러했듯 다시금 유럽의 문화수도로서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는지 공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1) 이날 밤 베를린 숲속에서는...
방금 내 앞자리에 누가 앉아있다 내렸는지도 종종 잊고 살게 되는 대도시의 지하철에서 승객들 간에 어떤 유대감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서늘한 여름이라지만 모두다 점퍼나 코트를 하나씩 옆구리에 챙겨 나왔다. 게다가 이들은 손에 어깨에 무엇인가 들어있는 듯 두툼한 가방을 짊어지고 있는데, 분명 그 내용물은 내가 둘둘 말아 들고 나온 담요와, 그 안에 감춰놓은 포도주병에 상당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서로 모르는 얼굴들이지만 그 사이에 훈훈한 느낌이 오간다. '흐음... 저이도 단단히 준비해 왔구먼!'



지하철역에서 발트뷔네로 향하는 시민들
지하철 S반5호선/75호선의 피헬스베르크 역에 이르자 객차의 문이 열리고 플랫폼에 함께 내리면서 이들의 심증은 굳어진다. 지금 베를린 시민들이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과 함께 짝을 이루어 향하는 곳은 바로 발트뷔네이다. 발트뷔네는 우리말로 옮기자면 '숲(Wald)속 무대(Bühne)'라는 뜻으로 베를린 교외 서쪽 편, 올림픽스타디움 ― 이곳에는 우리에게는 일제시대, 독일인에게는 나치즘이 지배하던 시대에 개최된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 대한 기억이 얽혀있어 한국인에게도 의외로 낯설지 않은 곳이다 ― 근처의 울창한 숲 속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야외공연무대의 이름이다.




발트뷔네 전경
마치 그 모습에서 고전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이 곳은 여름이면 클래식음악에서 락음악까지 다양한 무대가 펼쳐지기에 베를린시민들은 시원한 숲속에서 음악을 즐기면서 일상의 긴장을 풀곤 한다. 올해에도 이곳에서 봄시즌을 마무리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공연이 있었고, 이어 8월초에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무대가 성황리에 열렸다. 그리고 바로 지금, 27일 토요일 저녁 8시를 기해 <제2회 이탈리아의 밤(die zweite italienische Nacht)>이라는 이름으로 헤수스 로페즈-코보스(Jesús López-Cobos)가 지휘하는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오케스트라(Deutsches Symphonie-Orchester, 이하 DSO)와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ée Fleming)과 테너 라몬 바르가스(Ramón Vargas)의 무대가 열린다.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것은 무엇보다도 테너 바르가스의 무대였다. 실황으로 그의 목소리를 직접 처음 접하였으며, 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키우게 된 계기는 지난 봄시즌의 막바지 무렵이었던 슈타츠오퍼(Staatsoper Unter den Linden)의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에서였다. 잠시 이날의 공연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2) <사랑의 묘약>에 얽힌 짧은 기억

슈타츠오퍼의 음악총감독(GMD) 다니엘 바렌보임의 오른팔 격인 젊은 지휘자 댄 에팅거(Dan Ettinger) 는 6월 24일 금요일의 공연에서 매우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선보였다. 그는 특히 지난 시즌 바그너 <탄호이저> 공연에서 재확인했지만 정확하고 성실한 비팅으로 기복이 없는 합주를 이끌어내기에, 바렌보임이 보이지 않는 포디움이 크게 아쉽지 않을 만큼은 신뢰감을 주는 지휘자이다. 바닥으로부터 음이 차오르는 슈타츠오퍼의 음향적 구조에 힘을 입고 단순하지만 적절하게 극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도니체티의 음악! 무거운 외투를 벗고 경쾌하게 춤을 추는 장조의 바그너라고 묘사하면 적절할까? 거기에다 넓은 무대로 부족해 심지어 무대좌우의 기둥 그리고 오케스트라 피트와 파켓[1층 가장 앞쪽에 배치된 좌석]사이의 ― 결코 그 위로 걸어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 ― 둔턱 위를 그리고 객석 사이를 가수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달리게 만드는 퍼시 애들런(Percy Adlon)의 연출! 한마디로 말해 이날의 공연은 시청각적으로 공히 청중의 ‘얼을 빼놓는’ 그런 것이었다.


종종 ‘뮤지컬’로 비유되곤 하는 도니체니의 본 멜로드라마에서, 항간의 스타 안나 네트레브코(Anna Netrebko) 못지않게 매혹적인 모습의 또 하나의 안나(소프라노 안나 사뮐, Anna Samuil)는 아디나 역을 맡아 자신만을 바라보는 네모리노(테너 바르가스)의 마음을 돌리라고 말하면서도 왜인지 네모리노에 대한 상냥한 미소를 숨기지 않아 결국은 네모리노도 청중도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게 만드는 고도의 연애기술을 선보였다.(그녀의 프로필은 여기를)


as Duke of Mantua in Rigoletto, MET, New York, 1994, Photo by Winnie Klotz
하지만 이미 지난 <사랑의 묘약> 무대를 지금 발트뷔네 공연리뷰를 쓰면서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무엇보다도 테너 바르가스 때문이다. 왠지 웃음을 짓게 만드는 그의 수더분한 인상에다, 약간은 통통한 몸매를 보자면 그는 영락없이 타고난 네모리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담백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바르가스의 가창력이야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검증된바 있다. 물론 이날도 네모리노의 1막 1장의 아리아 ‘아!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Quanto e bella, quanto e cara!)’와 2막 2장의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을 비롯,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향해 청중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잇달았다.

도밍고를 연상시키는 음악성과 연기력을 소유한데다 젊음의 생기까지 합쳐진 이 성공가도위의 가수에게 만일 ‘최고의 테너’가 되기 위해 남은 숙제가 하나있다면 과연 그가 구원의 실마리라고는 보이지 않는 고통에 찬 비극의 주인공으로서도, 사랑의 아픔을 호소하지만 결국은 위안을 얻는 인물인 네모리노의 역할에서처럼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을지의 문제가 아닐까? 그 성공 여부는 긴 호흡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오늘의 갈라 콘서트라는 형식을 통해 이러한 궁금증의 일부는 어느 정도 풀릴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숲속 무대에 도착하였다.


(3) 발트뷔네 공연


운이 좋게도 원형극장 제일 아래 좌석 중앙부근에 자리를 구할 수 있어 여기에 가져온 담요를 깔고 만반의 준비를 하는 동안, 오늘 연주를 담당할 DSO 단원들도 하나둘씩 등장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휘자 로페즈-코보스가 입장하자 곧 벨리니 <노르마>의 서곡으로 제1부 공연이 시작되었다. 갈라 콘서트의 주인공인 두 성악가의 연주에 대해 쓰기 전에 이날의 지휘와 관현악 연주에 대해 코멘트를 달아 보도록 하겠다.

지휘자 로페즈-코보스는 1981년부터 90년까지 베를린 도이체오퍼의 음악총감독으로서 1987년 동 단체를 이끌고 일본에서 최초의 <링> 사이클을 소개한 것을 비롯하여 여타 화려한 경력을 지녔음에도 왜인지 이상할 정도로 자주 언급되어지지 않는 인물이다. 분명한 것은 베를린이 그를 그다지 아끼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다음날 베를린 쿨투어라디오(Berlin Kultur-Radio)에서 ‘이날 그의 실망스러운 장악력은 10년간 베를린 도이췌오퍼의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이 지휘자를 왜 아무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라는 요지로 독설을 쏟아낸 것도 그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번 무대는 과연 실패였나? 실상은 그 반대이다. 왜냐하면 현지 공연평론가 뤼어스-카이저(Kai Luehrs-Kaiser)의 비판은 사실 ‘음악적으로는 성공, 다만 행사진행에 있어 아쉽다’라는 그가 직접 내린 총평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르마> 서곡을 포함하여 순기악곡으로서 DSO는 2부에서 베르디의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서곡 및 F. 슈미트의 <노트르담> 간주곡을 연주했다. 야외무대의 특성상 무대 아래에 배치된 대형 PA 시스템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기에 음향적인 면에서 오페라하우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을 바라지는 않았고, 사실 제1부의 내용도 이런 면에서는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제2부의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소리가 확 달라졌다는 느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의 연주가 음량과는 무관하게 전체음의 일부만이 전달된다는 느낌이었다면, 제2부에서는 관현악이건 아리아 연주이건 음악이 앞 뒤에서 몸을 휘감고 있는 듯 보다 만족스러운 음향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비로소 지휘자의 역량 탓이든 야외무대의 제약 때문이든 간에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던 DSO의 연주가 호소력을 지니고 들리기 시작했다. 과거 RIAS-Symphonie-Orchester vom Rundfunk im amerikanischen Sektor라는 단체명으로 전후의 미군점령지역 베를린에서 결성되어 명지휘자 페렌츠 프리차이(1948-63), 로린 마젤(1964-75), 리카르도 샤이(1982-89) 및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1989-99), 그리고 현재의 켄트 나가노가 차례로 쌓아올린 DSO의 진가를 십분 즐길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아쉬움이기도 했다.

즉 다시 풀어보자면, 본 콘서트의 두 주역 소프라노 플레밍과 테너 바르가스에게는 그다지 불평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사실 두 가수의 첫 듀엣곡 “Ma qual mail s'offre, o dei ... fugii, curdele, fugii!”(모차르트, <돈 조반니> 1막)의 경우처럼 플레밍과 바르가스의 앙상블이 그리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두 가수의 음색의 무게와 밝기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었으나 1부의 마지막곡, 플레밍의 장기인 마스네의 <마농> 3막 중의 “Toi! Vous! - Oui, c'est moi"에서는 훨씬 긴장감 있는 호흡을 들을 수 있었다. 기타 총 3곡의 듀엣을 제외하고는 두 가수가 번갈아가면서 홀로 각각 4곡씩 자신 있는 아리아를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에 앙상블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차후로 미루어야 할 듯싶다. 참고로 이번 시즌 메트에서 각각 <마농>과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는 플레밍과 바르가스는 내년 6월 메트의 일본 투어에서 <라 트라비아타>로, 그리고 내년에는 다시 뉴욕에서 <에프게니 오네긴>으로 한 무대에 서게 된다.

조금은 어두우면서도 부드러운 음색 때문인지 그녀는 목소리가 덜 묻히는 독창에서 빛이 나는 듯 했다. 그녀 특유의 무거운 음색이 바르가스와의 듀엣에서 잠시 처지는 인상을 불러 일으켰다면, 반면 카탈라니의 베리즈모 오페라 <왈리>의 “Ebben, ne andró lontana”나 “O Mio babbino caro"(푸치니, <쟈니 스키키>)와 같은 칼라스의 목소리로 익숙한 명 아리아들에서 청중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내는데 일조하였다. 발성에서 자극적인 표현을 자제하면서 자연스럽고도 여유로운 템포로 그녀는 2부에서 “Mercé, dilette amiche”(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와 “Io son l'umile ancella"(칠레아,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를 연주하였고 그때마다 청중의 환호는 계속 뒤따랐지만 그녀의 연주만을 뒤돌아보면 마지막의 결정적인 감동까지는 전달하지 못한 무대였다.

1부에서 바르가스는 도니제티의 두 아리아를 선택했다. 필자가 기다리던 비극성의 표현이 해석에 있어 핵심이라 할 “Inosservato, penetravo ... Angelo casto e bel"(<알바 공작>, 4막) 그리고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제3막의 “Tombe degli avi miei ... Fra poco a me ricovero" 등의 벨칸토 아리아에서 그는 바로 얼마 전 네모리노를 불렀던 것이 무색할 만큼, 또한 곡이 계속 바뀌는 갈라 공연의 핸디캡 속에서도 감정에 몰입한 연주로서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하지만 1부에서 이미 오페라계의 히트 넘버들로 듣는 이를 사로잡은 플레밍에 비해 바르가스의 진면목은 2부, 무엇보다 프로그램 중 그의 마지막 독주곡인 <토스카> "E lucevan le stelle"에서 제대로 드러났다. 얼마 남지 않은 처형순간을 기다리며 토스카와의 만남을 회상하는 카바라도시의 독백 장면에서 그는 야외무대에서는 참으로 기대하기 힘든, 가장 음악적인 순간을 만들어 냈다. 어찌 보면 가장 깊은 절망도, 한없이 눈부신 환희도, 그 순간만큼은 순수한 자기 존재와 마주친다는 점에서 어떤 공통점을 나누어 갖고 있지 않은가? 바르가스는 탁월하게도 자신의 순수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비극성의 표현에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벨칸토의 미적 이념이 아닐까?




앞서 적은 2부의 음향적 향상이 더해져 이 순간만큼은 야외무대라는 장소를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바르가스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지지’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프로그램 상 마지막 곡이자 마지막 듀엣곡 “Libiamo ne'lieti calici"(베르디, )이 시작되자 필자는 아쉬움에 그리고 흥에 못 이겨 일어나 앞쪽 무대로 향했다. 무뚝뚝해 보이는 독일관중들도 마음속은 아까부터 똑같았음이 틀림없는 것이, 이들도 얼마 안 지나 마치 락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무대단상 바로 아래까지 몰려나와 어깨를 마주하고 모두들 다리를 들썩거려가며 즐거워했다. 그러한 흥겨움 속에서 본 공연이 끝났지만, 당연히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브라보” 소리에 앵콜이 바로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플레밍은 독일인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슈바르츠코프로부터 사사받은 경력을 상기시키는) 유창한 독일어로 어둡고 쌀쌀해진 숲속이지만 따뜻한 여름날의 햇볕이 없을 수는 없다면서 거슈인의 “Summertime"을 불렀고, 바르가스의 앵콜에 이은 의 듀엣곡으로 이날의 공연은 대단원을 내렸다.

아쉬운 화질이나마 ― 흥분해서인지 어눌한 독일어로 “우리 모두 춤을 춰봅시다!”라며 시작된 ― 바르가스의 앵콜곡 로시니의 La danza (tarantella napoletana) 동영상으로 이번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p.s. 앞부분에서 잠시 바르가스의 귀여운 골반춤(?)이 등장하니 놓치지 마시길)